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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 감상평

자손영 2023. 12. 4. 20:18
무거운 주제에 비해 너무나 얕아져버린 서사

 

-군사정권에 대해 다루는 대중영화가 나온 것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

-명확한 선악 대립구도를 만들어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덧칠된 등장인물들.

-남녀노소, 배경지식과 무관하게 즐길 수 있기 위해 대중성과 적당히 타협한 결과물.

-“나는 군부가 싫어요”식의 프로파간다물이 아닌 보다 현실적인 관계와 맥락을 보여줬으면...

23년 4분기 개봉한 영화 서울의 봄. 12.12 군사반란 사건을 다룬다.

우선 전두환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언행과는 많이 달라진 캐릭터로 등장한다. 상당히 그럴듯한 분장과는 별개로 내용 측면에선 매우매우매우 큰 틀만 가져오고 사실상 황정민의 군부악역A 같은 모습이 계속 느껴져서 좀 아쉬움이 느껴지긴 했다. 다만 평소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는 악인에 대한 평가보다는 선인 혹은 방관자들에 대한 평가를 날카롭게 하는 것이 내 뒤틀린 성향이라 개인적으로 최소한 이 영화에서 이뤄진 황정민, 혹은 각본가의 전두환 재해석에 대해선 크게 문제가 될 수준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나는 영화에서 장태완 장군(작중 수경사 사령관 이태신)을 완전무결한 정의의 사도로 만드는 모습이 탐탁지 않았다. 이건 장태완 장군이 광화문을 지나치면서 이순신 장군 동상을 바라보는 장면을 비추며 극에 달한다. 실제 12.12 사건당시 장태완 장군이 보여준 행적은 이미 그 자체로 충분한 의인이자 영웅의 모습이었는데 여기서 굳이 억지로 덧붙일 필요가 있냐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 시기 군부에 있었던 사람들은 다 좋든 싫든 박정희와 그 중심세력들로부터 직간접적인 지원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한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다만 내가 알기론 장태완 장군은 12.12 훨씬 이전부터 하나회와는 강하게 대립하는 관계였다) 이건 거칠게 말하자면 겨 뭍은 개가 똥 뭍은 개를 막아보려다 진 이야기다. 영웅이라고 모든 과거가 다 깨끗하고 항상 당당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완전치 못한 인물들이 필요한 순간 정의로운 행동을 보일 때 더욱더 빛나고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참모차장, 특히 국방장관과 같은 수뇌부들이 필요이상으로 더 무능하고 찌질해진 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안타까움을 느낀다. 행적자체는 거의 사실에 근거하고 있긴 하나 작중에서의 대사와 모습을 보면 마치 “봐라, 이때의 정치인들과 수뇌부가 이렇게 무능했다. 이제는 이렇게 되지 말자... 다들 뭔 말인지 알겠지?” 라는 식의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전달하는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쿠데타 당시 무능했던 수뇌부들에 대한 비난과 선악구도 만들기의 일환으로 최대한 이들을 추하고 찌질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전체적인 내용 역시 매우 길었던 군사정부/민주화 시대의 전체적인 맥락을 제대로 짚지 않고 현장에서 군 부대가 몇 시에 어디로 갔다는 브리핑이 주가 되며 마치 무전병, 특파원 마냥 빠르게 움직이는 현장 상황을 읊고 있을 뿐, 단순 그날의 사건 하나에만 집중하고 12.12 이후는 마치 애들 동화의 “용사와 공주는 그렇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식으로 뒷이야기를 뭉개놓으니 아쉬움이 느껴졌다.

 

이건 수백년 전을 배경으로 하는 사극이나 지지고 볶고 뭔 짓을 해도 아무렴 상관없는 이세계물이 아니라 아직도 당시의 당사자들과 기록들이 생생히 살아있는 대한민국의 현대사다. 타협하고 입맛대로 각색하기보단 가능한 한 있는 사실을 최대한 가져와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제한된 러닝타임과 매끄러운 스토리전개, 더 나아가선 대중성과 같은 현실적 요소를 고려한 타협이었겠지만 쿠데타 이전부터 하나회가 군부를 장악해가는 과정이나 12.12 이후의 한국의 민주화와 변천과정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포함해야하지 않았나 싶다. 영화를 보면서 대중들이 잊어가고 있던 군사정권, 민주화 이전 야만의 시대에 대해 다시 상기하는 것은 좋으나 이런 영화만 계속 나오고 보게 된다면 편향되고 이분법적인 사고를 가지게 되지 않을까하는 것이 영화를 보고나서 느낀 내 작은 우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