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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에 대한 감상조각들과 개인적인 해석>

자손영 2023. 11. 4. 09:57
최근 한국에서도 개봉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화제작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 본 영화에서 등장하는 인물들과 오브제, 연출 등은 그 자체로 상징과 의미를 가지기도 하지만 기존 지브리 작품 혹은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이 영향을 받은 작품들의 오마주인 경우가 많기에 미야자키 하야오의 기존 작품들을 본 사람들은 좀 더 익숙하고 이해하기 편할 수 있다.
 
 
- 개인적으로 단테의 신곡과도 꽤나 비슷한 면이 많이 보였다. 주인공과 안내자와 동행하며 내세(혹은 환상세계)를 탐험하는 이야기와 작품 내부의 상징적 존재들, 다양한 인간군상과 죄악을 저지른 자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유사점이 느껴졌다.
 
 
- 이 작품이 일제 군국주의의 미화라고 주장하며 혹평을 하는 여론이 일부 있다는 것을 관람 이후에 들었는데 만약 이 작품이 그저 일본 제국주의 시절의 모습을 미화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본 작품에서 미야자키 하야오가 전하려고자 하는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나는 이 영화가 철저한 반전주의 작품이자 과거 세대들이 저질렀던 죄에 대한 고백이라고 느꼈다. 영화의 어떤 장면을 봐도 절대 일본의 군국주의를 긍정적으로 보는 영화는 아니며 작중에서도 군국주의 혹은 그와 비슷한 야만성을 보이는 인물들은 결코 긍정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 감독 본인의 상당히 자전적인 이야기를 동화적이고 추상적으로 풀어낸 이야기이며 제목에서 말하듯 "나는 이렇게 살아왔으니 너희들은 이제 어떻게 살아갈건가?" 라는 식의 그가 던지는 질문이자 미래세대들에게 남기는 나름의 조언이라고 생각한다.
 
 
- 이전 작품들은 비유와 상징같은건 어디까지나 무시해도 크게 상관없는 곁다리고 동화적인 서사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면 이번 작품은 그가 말년에 들어서 상업성을 더이상 신경쓰지 않고 오직 미래세대들에게 해주고픈 본인의 이야기와 교훈들을 최대한 담아볼려고 노력한 결과물이었다고 느껴진다.
 
 
-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정석적인 기승전결을 이루는 작품이 아닐 뿐더러 여타 타 작품들과 다르게 수많은 비유와 상징들이 존재하기에 이를 모두 해석하기는 어렵다. 아마 미야자키 감독 본인도 이 모든걸 다 눈치채고 이해하길 바라기 보다는 관람자들이 각자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보기를 원한게 아닌가 싶다.
 
 
 
 
다음은 영화에서 등장하는 인물과 상징들이 의미하는 바에 대한 내 나름의 해석이다.
 
 
탑 안의 세계: 단순히 내세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주인공이 살아가는 세상(메이지-쇼와 제국주의 일본)에 대한 동화적인 투영이라고 생각함.
 

 

큰할아버지: 메이지 유신 당시 빠르게 개화한 소수 지식인이자 메이지 유신 이후의 세계를 쌓아올린 세대. 자신들이 만들어낸 세상이 매우 불안정하고 더이상 이어지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나 차기 세대(히미, 마히토, 나츠코의 아기)를 이용하면서까지 어떻게든 이를 유지해보려고 한다.
 
탑의 세계를 유지하는 관리자이자 주인님으로 모셔지는 듯 하지만 실상은 돌(운석)과의 계약에 묶여있고 상당히 무력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것으로 보아 처음엔 호기롭게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보려 했지만 여러 문제들이 발생하고 결국엔 무력하게 다 무너져가는 세계를 어떻게든 메워볼려고 발버둥 쳐보는 안타까운 인물로 보이기도 한다.
 
 
자료사진은 탑 안 세계에서의 '돌'(운석)의 일부이며 현실세계에서의 운석은 구멍이 송송 뚫려있는 세로로 길쭉한 타원형의 형태다.
운석: 에도 말기~메이지 시대 들어온 서구 문명, 관습, 제도와 같은 이질적인 요소의 총체. 큰할아버지가 운석주변을 둘러쌓아 건물(탑)을 만들어 낸 것 역시 새로운 서구문화와 제도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메이지 유신 시대를 보여준다고 생각함. 건물을 만들때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것도 에도막부말기 일어났던 보신전쟁과 같이 일본 개혁의 과도기 간 생겨난 희생자들을 의미한다고 본다.
 
 

 

여기서 탑은 사진 속 큰할아버지의 테이블에 쌓아져 있는 탑과 현실세계에서의 별채(탑) 둘 다를 말한다.
탑: 세계 혹은 사회, 제도를 상징함. 큰할아버지가 쌓아올린 탑은 너무나 불안해서 당장이면 쓰러질 것 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이는 당시 급진적으로 들어온 메이지 시대의 제도와 사회의 고질적인 불안정성을 보여주고 결국 이는 앵무새 왕(제국주의, 군국주의라는 야만과 광기)에 의해 붕괴된다.
 

 

마히토: 새 세대, 작가의 유년시절이 투영된 모습이며 동시에 독자들을 상징하기도 함. 마지막에 돌의 파편을 가지고 있는 모습은 마히토와 같은 신세대가 쌓아올려갈 새로운 세계의 기반이 될 한 조각을 의미한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세계(사회)는 큰 할아버지때처럼 급하게 쌓아올려지는 것이 아닌 점진적으로 세대를 거쳐가며 쌓아올라가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 같았다. 돌 조각을 가지고 있어 이세계(탑 안의 세상) 일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라는 왜가리의 대사 역시 이전 세계의 편린(기억과 교훈)을 바탕으로 세 세계를 만들어가는 전쟁 이후 세대들의 모습을 비유하는게 아닌가 싶다.

 

 

히사코(히미): 마히토의 엄마. 전쟁 직후 화재로 인해 죽게된다. 전쟁이라는 야만적 행위의 결과물로 인해 생겨난 비극을 단적으로 보여주며 전쟁이라는 광기에 희생당해버린 마히토가 아끼고 사랑했던 선한 인간상의 대표격이다.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내적으로 충격을 많이받은채 마음의 문을 닫은 마히토가 탑 속 세계에서 소녀의 모습을 한 엄마(히미)를 만나 맛있는 밥을 먹으며 행복해하는 모습은 현실 세계에서 이사 온 집에서 감흥없이 맛없는 밥을 먹던 모습과 대비된다. 이 부분은 마히토가 그토록 바랬던 어머니와의 행복한 시간을 가지며 애정과 관심을 충족받고 싶은 마히토의 어린아이로서의 내면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사용인 노인들(키리코를 비롯한 할머니): 겉보기에는 백설공주의 난쟁이들마냥 약간 모자라보이고 물욕도 있어보이는 평범한 늙은이들같아 보이지만 작품 내내 마히토가 탑 속 세상에서 다치지 않게끔 지켜주는 수호자 역할을 해준다. 새로운 세대들이 상처받고 희생당하지 않게 지켜주는 책임감있는 어른상을 의미한다고 본다.

 

 

복장만보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근대 군주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며 파시오네의 무솔리니와도 비슷해보인다.
앵무새(+앵무새 왕)/팰리컨: 당시 군국주의가 극에 달하던 시절의 대중들과 군 수뇌부. 사람들과 새로 태어나려는 와라와라(동글동글한 풍선아기같은 정령체?)들을 잡아먹는 모습은 자신들의 안위와 이익을 위해 무고한 사람들과 이후 세대들을 희생시키는 모습을 상징한다. 결국 마지막에 칼을 뽑아들어 탑을 부숴버리고 스스로 파멸에 이르는 것 역시 일본 제국주의가 보여준 광기의 끝과 패망을 의미한다고 본다.
 

 

아버지: 군수품을 만드는 공장주. 황금만능주의적인 경향을 다소 보이며(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마히토와 나츠코가 사라지자 칼을 차고 이들을 찾으려는 점에서도 폭력과 자본으로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피상적인 모습을 보인다. 겉보기에는 멀끔하고 상당히 잘나가는 능력있는 인물이나 작품에서 진행되는 근본적인 문제와 갈등을 전혀 해결하지 못하는 수동적인 인물로 보여진다. 
 
 
 
나츠코: 마히토의 이모이며 새 엄마. 마히토의 아버지의 재혼상대이자 그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이며 탑 속의 세계로 끌려가게 된다. 탑의 세계에서 아이를 낳아야하는 상태(자신의 탑을 이어서 쌓아줄 후계자를 찾기위한 큰할아버지의 계획이었다고 추정)였지만 결국 마히토와 다시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게 된다.
 
히사코 만큼이나 다정하고 따뜻한 인물로 묘사되는데, 마히토가 처음엔 그녀를 대하는게 다소 어색해서 거리를 두던 것도 있겠으나 아마 마히토는 그녀의 모습과 성격을 보며 자신의 어머니를 그녀에게 투영하게되었던 것 같고 또 그 모습을 보면서 다시 자신의 어머니를 잃어버릴 것 같은 불안감을 끊임없이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왜가리: 거짓말쟁이, 가식쟁이면서 우스꽝스러운 행동으로 다소 무거운 작품의 분위기를 환기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탑 안의 세계를 마히토에게 안내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적대적인 모습을 많이 보이는 다른 조류 등장인물들과 달리 결과적으로는 주인공을 도와주게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어찌보면 살아남기 위해 야만성(새)을 띈 모습을 하고 교활한 척 하지만 내심 여전히 뒤 세대들에 대해 생각하려하고 이들을 지켜주려는 책임감 있는 어른(탈 속의 노인)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인간상을 표현한 듯 싶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세상의 풍파에서 살아남기 위해 거칠고 쌀쌀맞아 보이는 가면을 쓰고 이제는 닳고 닳아버린 노인이 된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이 아직 세상을 모르고 위험하다 싶을정도로 정의와 올바름을 쫒는 '참된 사람'(眞人-마히토)인 주인공을 안내해주고 조언해주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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