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1) 내가 끊은 세 가지: 담배에 대한 나의 이런저런 이야기들

자손영 2024. 9. 25. 18:47

 우리 집은 친할아버지가 담배와 각종 음주가무를 즐기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폐암으로 단명하셨기에 예전부터 술담배에 대한 인식이 매우 좋지 않았다. 당장 부모가 그렇게 빨리 세상을 떠나셨다보니 나의 아버지와 큰아버지도 담배는 아예 입에 대지도 않고 술도 자의로는 마셔본 적이 없으시다. 지금 생각해보니 명절에 친할머니댁에 주변 친척들이 다 모여도 아저씨들 특유의 담배 쩐내나 술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고 항상 쾌적했다. 아이들 정서에 있어서도 정말 잘 선택하신 일이다. 가족을 비롯한 친인척중에 담배를 피시는 분이 단 한 분도 없다는 점은 내가 어딜 가도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우리 가족의 최고 장점 중 하나다.

 

 내가 처음 담배를 펴본 것은 입대직전 21살쯤이었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한두개비 정도 펴본 것이 다였으며 본격적으로 흡연을 시작한건 역시 입대 이후이다. 원래도 내성적이고 맡은 일에 지나치게 부담을 느끼는 나에게 있어 군대의 긴장된 단체생활은 하루하루가 고문과 다름없었고 마땅한 오락거리도 없다보니 자연스럽게 담배에 손이가게 되었다. 군대는 유난히 흡연율이 높은 집단이다. 동기는 물론이요 선후임들과 간부들 절대 대다수가 흡연자이니 담배피면서 주고받는 정보나 유대감이 많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담배를 피지 않으면 남들 흡연할 때 비흡연자들은 붕 뜬 채로 일을 더 해야 한다거나 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잦았다.

군필자를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듯 많은 수의 성인 남성들이 군대에서 담배를 배우게 된다. 사진출처: KBS 뉴스

 

 일병 5호봉때쯤 일요일에 선임들과 같이 PX에서 간단한 회식을 하다가 정신을 잃고 발작을 하게 된 대형사건이 발생했다. 눈을 뜨고 보니 PX앞 도로에 하늘을 바라본 채로 누워진 상태였고 얼마가지 않아 앰뷸런스에 실렸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가까운 시내의 대형병원에 입원되어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경험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겪어본 일이었고 내 몸을 내가 전혀 통제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두려웠다.

 

 같이 있었던 주변 사람들의 말로는 테이블에 앉아서 냉동을 먹으려다 그대로 옆으로 엎어져 거품을 물고 발작을 했다고 한다. 어디 길바닥이 아닌 PX에서 앉아있는 채로 쓰러졌으니 불행 중 다행이자 그야말로 천운이 따랐다고 밖에 할 수 없다. 당시 병원에서 MRI촬영과 각종 뇌전증 검사까지 했음에도 특별히 나타나는 증상은 없었고 지금까지 비슷한 증상이 전혀 없으니 정확한 진실은 알 길이 없다.

 

그나마 기절하기 직전까지 기억을 되짚어보면 당시 PX의 형광등이 보수가 제때 되지 않아 엄청나게 깜빡거리고 있었는데 추측컨대 아마 광과민성 발작의 일종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참고로 내가 그렇게 쓰러진 이후 PX의 형광등은 거짓말처럼 바로 교체되었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도 비슷한 증상은커녕 징후조차 느껴본 적이 없는데 아마 정신적, 육체적으로 상당히 피로했기에 평소였다면 있지 않았을 사고가 여러 악재들이 겹쳐서 일어난 일이었다고 봐야할 것이다. 이때는 내가 막 담배를 피기 시작했던 무렵이기도 했는데 흡연이 가뜩이나 지쳐있던 심신에 더욱 악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번쩍거리는 빛으로 인해 발생하는 뇌전증(간질) 증상의 일종으로 주로 어린아이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증상이다. 사진출처: 유튜브 KBS 실험실

 

 안타깝게도 그렇게 호되게 당한 이후로도 나의 흡연경력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잠시 금연을 했다가 행정병 업무, 전문하사 임관 등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려 다시 흡연을 시작하고 만 것이다. 주변에 마땅히 말릴 사람도 없다보니 이 금쪽이 20대 청년의 일탈은 전역 전까지 계속되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일이 힘들고 스트레스가 어쩌니 하는 건 사실 금연을 하는데 있어 전부 핑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상식적으로 몸이 힘들고 정신이 힘든데 왜 돈을 내고 몸을 더 피폐하게 만드는 짓을 한단 말인가. 흔히 군대에선 즐길거리가 마땅히 없으니 담배를 핀다고 하는데 나름대로 찾아보면 산골짜기 외딴 오지에서조차 찾을 수 있는 것이 오락거리다. 군대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금연을 못한다는 것은 다른 생산적인 활동을 찾을 노력도, 용기도 없는 사람이 하는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전역 한참 후에, 이십대 중반이 되고 나서야 깨닫고 말았다.

 

 마지막 금연시도를 하게 된 계기는 생각보다 사소한 일이었다. 전역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병사들과 같이 뜀걸음을 하게 될 일이 있었는데 분명 예전이었다면 큰 무리 없이 뛸만한 거리와 페이스였음에도 숨이 차오르고 몸이 퍼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한참을 헉헉대고 나니 내가 이대로 가다간 정말 몸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전역을 기점으로 모든 담배를 싹 다 처분하고 한 번에 금연을 하였다. 담배를 끊고 나니 그제야 내 주변 물건들과 주변 흡연자들로부터 나는 끔찍한 담배냄새가 느껴지기 시작했고 그 중에서도 군 생활 간 사용한 지갑은 아예 담배 냄새에 푹 찌들어 무슨 짓을 해도 냄새가 빠지지를 않아 냅다 갖다 버렸다.

흡연자가 가지는 치명적인 디메리트는 바로 골초일수록 냄새에 무감각해진다는 것이다. 특히 본인을 포함해서 주변의 담배 냄새를 거의 느낄 수 없다. 사진출처: 게티이미지

 

 금연을 하고 나니 여러 긍정적인 변화들이 직접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개차반이었던 폐활량도 금연이후 많이 회복되었고 온갖 부스럼과 뾰루지 등으로 성할 날이 없던 피부도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 도대체 흡연자일 시절에 어떻게 일상생활을 했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삶의 질이 훨씬 좋아졌다. 전역 이후로도 잠시 방황할 때 간헐적으로 액상담배 등을 피우긴 했으나 그마저도 대학에 복학하고 니코틴이 깨끗한 정신을 해치고 수면패턴을 망가뜨리는 것이 몸으로 느껴져서 작년쯤부터는 아예 입에 대지 않고 있다.

 

 사족이지만 나는 한때 담배를 피우는 여성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상한 페티쉬를 가졌었는데(원초적 욕망의 샤론 스톤을 생각해보면 쉽게 상상이 갈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당연하게도 여자가 담배를 펴서 특별히 예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예쁜 여자가 담배를 피운 것이다. 당장에 내가 담배를 피운다고 초절정 퇴폐 미청년이 되는 게 아닌데 여자라고 다를 거 있나. 여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흡연경험이 뒤섞여 나온 기괴한 욕망이었다고 스스로 자조하고 있다. 지금은 당연하게도 담배를 피우지 않는 건전한 여성이 훨씬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린 영화 '원초적 본능'에서 범죄 소설가 캐서린 역으로 분한 샤론 스톤의 이 흡연 취조씬은 영화 역사상 손에 꼽는 명장면이자 20세기 팜 파탈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출처: The Korea Daily

 

 개인적인 편견일지는 모르겠지만 남녀를 불문하고 흡연을 즐기는 사람들 치고 본받을 만큼 건전하고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찾기가 매우 힘들다. 흡연은 문신과 여러 가지 의미에서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문신은 피부에 새기는 영구적인 낙인이지만 흡연은 폐에 새기는 영구적인 낙인이라는 점에서 더욱 스스로를 좀먹는 악질적인 습관인 것이다. 20대 초반에 겪은 이러한 경험들은 내가 오늘날 담배를 멀리하게끔 만들었고 앞으로도 당장 내일 세상이 멸망하는 일이 있지 않고서야 내가 다시 담배를 피게 될 일은 없을 듯하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나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비추어 보건대 담배를 제 손으로 피우는 어리석은 짓은 제발 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