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7월 일본여행기

프롤로그: 나는 왜 여행을 떠나게 되었나

자손영 2023. 8. 4. 00:16

이번에 오사카 우메다 스카이빌딩에서 찍은 사진.

예전부터 세계 이곳저곳을 다녀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어릴적에도 부모님이나 개인적인 기회를 통해 국내의 타 지역들을 몇번 가보면서 상당히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극도의 내향형 인간인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게 무슨 모순인가 싶지만 평소 생활부터가 히키코모리에 가까운 집돌이에게 일정주기로 모험심이 들끓어오르는 것은 어찌보면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18년도 초 대만의 야시장에서 찍은 사진. 지금과 다르게 턱선이 살아있다.

이전까지 나의 해외경험은 상당히 빈약한 편이었다. 비행기만해도 20살 전까지는 제주도에 가볼때나 몇 번 타본것이 전부이고 해외도 대학 입학 전 봄방학 시기 일가친척 가족여행으로 대만을 한 번, 입대 전 엄마와 간단하게 패키지여행으로 짤막하게 오키나와에 휴양차 가본것이 전부였다.

 

6개월간 단기 아르바이트 느낌으로 잠깐 한 전문하사. 상당히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좋은 경험이 되었다.

마땅히 이렇다할 해외경험없이 그렇게 어영부영 입대를 하게 되었고 군생활 도중 코로나 판데믹이 발생해 휴가도 제대로 못나가고 전역을 하더라도 마땅히 어딜 제대로 갈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된 이상 돈이라도 벌어놓자는 심정으로 전문하사를 잠깐 하기도 했지만 전역을 하고 나서도 한동안 유행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또 별 볼일 없이 전역 후에도 1년 정도 시간을 그대로 보내버렸다.

 

군생활 전후로 내 생활은 술과 게임이 전부였다.

지긋지긋하던 코로나는 올해 초쯤이 되어서야 겨우 진정되는 기색이 보이기 시작했고 무기력증에 빠진채 하루종일 방구석에만 있던 나도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새내기시절 국제관계를 전공으로 고르고 나름 인터내셔널한 인간이 되고싶다는 나의 야망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어느덧 화장실 거울 앞에는 꿈도 희망도 없는 방구석 폐인만이 남아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대학 졸업 전까지 아무것도 한게없는 잉여인생이 될거다' 라는 위기감이 뒤늦게 찾아오기 시작했고 지금이라도 모아둔 돈으로 뭐든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벌어놓은 작은 목돈으로 사업이나 투자를 하는등 직접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생산적인 일을 할 생각은 딱히 없었다. 내가 주변 어른들과 지인들을 보면서 가장 확실하게 느꼈던 것은 돈은 늦게 벌 수 있을지언정 경험과 추억은 젊을 때 가능한 한 많이 쌓아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나는 대학교 등록금도 운 좋게 장학금을 받고 있고 나 혼자 쓸만한 정도의 목돈도 조금 있다보니 원한다면 언제든지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힘들게 번 돈이 순식간에 휴지조각이 된 심정은 참담했다.

당시 내가 가지고있던 가용자금은 약 1000만원 정도. 중간에 주식에 잠깐 한눈이 팔려 중간에 200~300만원 가량을 허무하게 날린적도 있지만 정신차리고 1년정도 주말알바와 학교 내 TA활동등 용돈이 될법한 소일거리들을 하며 어찌저찌 다시 원금을 채웠다.  이때의 경험으로 주식은 나같이 우유부단하고 속좁은 사람이 할 짓이 못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대학졸업 전까지 최소 3곳정도의 여행지를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우선 첫번째 목표는 가장 가까우면서도 진입장벽이 낮은 일본으로 설정. 예전부터 별의 별 애니메이션들을 봐온 오타쿠이기도 하고 전공이 전공이다보니 일본의 근현대사, 정치, 문화등을 몇 번 배워 가장 이해도가 높은 나라였다. 마침 원래 집구석에 있는 일행이 내가 군대 가기 전부터 일본여행을 같이 가보자는 얘기를 계속해 이번 기회에 같이 동행해서 가보기로 했다.

 

23년 1월의 도톤보리. 무비자 여행도 풀린지 얼마 안되었고 아직 판데믹 중이여서 지금과 달리 상당히 한산하다.

본격적인 장기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먼저 탐색차 오사카를 연초에 4박5일정도 들렸다. 이때동안 갔던 여행들은 다 어른들과 같이 간 패키지 여행이었기에 실질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자유로운 해외여행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름 친숙한 나라지만 아무런 도움없이 해외를 돌아다닌게 처음이었기에 불필요한 지출도 꽤나 나갔었고 시행착오도 겪었었다. 그래도 덕분에 일본이 어떤 나라인지 대충이나마 알게되었고 관광에 필요한 여러 정보들을 습득할 수 있었다.

 

처음해본 자유여행에 약간의 불안함이 항상 있었는데 오사카에서의 짦은 탐방여행을 통해 이정도면 확실히 오래 머물러도 문제가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생긴 자신감으로 다음 여름방학에 아예 도쿄에서부터 후쿠오카까지 큰 도시를 경유해가며 여행을 해보자는 계획까지 세우게 된다. 일행도 처음에는 이 정도의 장기여행을 가는것을 썩 내키지 않아했지만 나와 부모님의 적극적인 권유에 결국 따라오기로 했다.

 

구글 맵의 길찾기 기능이 여행 전 계획에도, 여행중에도 상당히 큰 도움이 되었다.

다시 찾아온 1학기를 보내면서 미리 숙소, 교통편을 알아보며 예매를 해놓았다. 사실 숙소의 경우에는 일본엔 숙박시설이 상당히 많고 일정도 현장에서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기에 그때그때 알아봐도 상관없었지만 같이 가는 일행이 아무래도 도미토리같은 공용 숙박시설을 이용하는것을 어려워하고 되도록 개인 화장실이 있는 것을 선호하여 별 수 없이 미리 예약을 다 잡았다. 다행스럽게도 에어비앤비, 아고다와 같은 숙소 예약 플랫폼에서 검색해보니 미리 예약을 하고 보통 체크인 일주일 전까지 무료로 환불을 할 수 있는 곳들이 많아서 그렇게 큰 부담은 아니었다. 

 

여행 전부터 틈틈히 계속 읽어온 여행 일본어책.

마지막으로 여행을 떠나기 전 언어에 대한 대비도 어느정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때 제2 외국어로 일본어를 선택하기도 했었고 대학 교양시간에 일본어를 배우기도 했지만 좋은 점수를 받은적은 한번도 없고 히라가나만 간신히 뗀 처참한 수준이었으며 그마저도 쓸일이 없다보니 천천히 까먹고 있는 중이었다. 이번 기회에 기본은 배워야겠다 싶어 히라가나/가타가나도 다시 외우고 최소한 여행에 있어 필요한 기본 어휘들을 학기 중 틈틈히 공부를 했다. 여전히 한자는 거의 읽지 못하고 문법적으로 전혀 맞지 않는 말 투성이인 엉터리 생존 일본어였지만 그래도 어찌저찌 간단한 의사전달정도는 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그렇게 6월 말, 시험도 완전히 끝나고 1년정도 하고있던 알바까지 그만두고 난 7월3일, 마침내 도쿄부터 후쿠오카까지 약 한 달간의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